후쿠시마의 유령도시에서 만난 기업가

후쿠시마에서는 방사능을 측정하면서 안전을 확인하며 움직였다. 시간당 0.15마이크로시벗은 방사능허용치인 연간 20밀리시벗보다 10배 이상 낮은 안전한 수치다.


2014년 10월 24일 금요일, 도쿄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후쿠시마 역에 도착했다. 후쿠시마 역에서 자동차를 타고 소마를 향해 출발했다. 신칸센 역이 있는 후쿠시마 내륙에서 동쪽 해안으로 이동하는 길이다.


가는 길에는 끊임없이 공사 현장이 나타났다. 길을 지나는 자동차 가운데 절반 이상이 공사용 대형트럭이었다. 나를 후쿠시마로 안내해 주던 'Bridge for Fukushima'의 활동가가 말했다.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지역을 청소하고 있는 중이지요. 그래서 사방이 공사랍니다. 지표면의 흙을 퍼내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원전에서 날아온 먼지를 없애고 있답니다.” 동행하던 일본인 전문가가 냉소적으로 덧붙였다. “이게 바로 아베노믹스이지요.”


원자력에 오염되었을 우려가 있는 지역을 흙을 퍼내서 옮기는 일과 쓰나미로 부서진 건물들을 철거하고 그 잔해를 치우는 일은 엄청난 공사다. 여기에 바다에 벽을 세우는 일까지 더해진다. 후쿠시마는 건설공사의 천국이다. 사방이 공사중이다. 공사 트럭도 건설 노동자도 모자라서 못쓰는 지경이다.


후쿠시마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13만 명이 재난지역에서 소개되었다. 이들은 여전히 임시 주거시설이나 정부가 얻어준 아파트에서 산다. 텝코는 이들에게 1인당 한 달에 10만엔(100만원)씩을 준다. 5만5천명에 대해서 정부는 대피명령을 해제할 예정이다. 대피명령 해제 뒤에도 1년 동안 이 지원금은 줄 예정이다.


먼저 쓰나미 이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의 어민을 만나러 갔다. 소마의 해변을 찾았다.


오랫동안 소마의 해변을 지켰던 타카하시 나가마사씨는 쓰나미로 운영하던 수산가공공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공장은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빌린 건물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자산 피해를 중심으로 보상하던 정부 보상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는 쓰나미로 사망한 동료의 공장을 빌려 수산가공업을 다시 시작했다. 


소마 해변의 많은 시설은 돌아왔지만, 사업은 돌아오지 못했다. 소비자들은 후쿠시마산 수산물을 더 이상 구매하지 않는다. 대형슈퍼마켓들도 등을 돌렸다. 한 때 500척의 고깃배가 들어오던 항구에는 아직도 125척의 배가 남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녹슬어 정박해 있다. 25척만이 현재 일주일에 1회 정도 출항해 고기를 잡는다. 

소마 지역 항구에 녹슨 배들이 정박해 있다.

소마 지역 희생자들의 위령비가 세워진 곳에서 지역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1주일 1회’는 보상금 지급 기준이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원전의 관리감독을 책임지고 있는 TEPCO(동경전력)가 지진 이전의 매출을 기준으로 보상을 해준다. 어업을 정상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입증하는 기준이 1주 1회 이상 출항을 하느냐다. 따라서 대부분 어선이 현재 1주 1회만 출항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어업정상화를 외치며 15만 달러(1억5천만원)를 들여 부두 시설을 복구했다. 그러나 어민들은 1주 1회만 이 시설을 사용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잡은 고기는 100% 방사능 검사를 한다. 따라서 여기서 잡아서 시장에 내놓는 수산물은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팔리지는 않는다. 후쿠시마의 수산업은 원전사고 이후 그 이전의 100분의 1로 축소됐다.


이제는 관광객도 자원봉사자도 줄고 있다. 사고 이후 2-3년 동안은 이 지역에 대한 관심 덕에 먹고살 수 있었다. 그 관심은 이제 끊어지고 있다. 이제 자기 힘으로 일어서야 하는데 쉽지 않다.


많은 어부들이 수산업 정상화 이후를 오히려 걱정한다. 시설이 복구되고 배가 출항해 고기를 잡아 와도 팔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TEPCO의 지원금은 끊어질 것이다.


타카하시씨는 수산가공공장을 운영하면서 지역 친환경 식당도 운영한다. 식당은 지방정부가 제공한 컨테이너빌딩에 있다. 같은 건물에 후쿠시마지역 재건을 돕는 비영리단체들도 입주해 있다.

지방정부가 지어준 콘테이너 빌딩의 식당을 방문했다.

하지만 그의 수산가공공장은 재료를 수입한다. 소마 해변에서 난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후쿠시마 재료를 사용해 만든 가공품이 팔리지 않으리라는 걱정 때문이다.


소마는 후쿠시마현 북쪽에 있는 인구 3만명의 도시다. 사실 여기서 30분만 북쪽으로 가면 후쿠시마가 아니라 미야기현이 된다. 미야기현의 어선들은 출항해 고기를 잡고, 100% 검사도 받지 않는다. 실은 후쿠시마 어민들과 같은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데 말이다. 규제가 불공평하다고 다들 생각하지만, 현재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지원금을 받고 있는 기간 만큼은 조용하다.


타카하시씨는 아들에게 공장 사업을 물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쓰나미와 원전 사고 이후 이 지역을 떠나 지내고 있는 아들에게 이제는 돌아오라고 말하지 못한다. 타카하시씨의 딸도 지역을 떠났다. 이제는 바닷물 보기가 무서워서 내륙지방에 살겠다는 말을 남기고.


우리는 차를 돌려 미나미소마(남소마)로 향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현장에서 좀 더 가까운 곳이다. 미나미소마의 해안 여기저기에서 무너진 방조제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정부는 그 자리에 다시 거대한 방조제를 지을 것이다. 방조제 하나는 축구장 하나 만큼의 크기를 자랑한다. 해안선을 따라가며 지어지는 7미터 높이의 방조제는 불필요한 거대 건설공사인 동시에 흉물이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나미소마의 해변 전역에서는 방조제와 방파제를 다시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동네를 쓰나미 이전으로 되돌리겠다는 정부 계획대로라면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그리고 당장은 정부 돈이 공사장의 노동자들을 통해 주민들 주머니로 들어가는 통로이기도 하다.


미나미소마에서도 주민 전체가 이동 명령을 받은 오다카역 주변 거리에 들렀다.


오다카 역 주변은 그야말로 유령 도시였다. 거리는 멀쩡한데 사람은 없었다. 건물 중에는 지진으로 반파된 것도 있었지만 상당수는 정상적이었다. 하지만 그 건물 중 어느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지 않았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오다카의 거리.

오다카 거리에서는 지진으로 상당히 많이 부서진 건물들도 보였다.

원래 미나미소마 내에서 오다카는 상당히 생기가 넘치는 동네였다. 동네에는 사람들이 몰렸다. 오다카역에는 일본 국영철도인 JR이 섰고, 관광객과 사업가들도 많이 들르던 도시였다. 아침이면 자전거를 탄 고등학생과 회사원 수십명이 역으로 와서 자전거를 세워 놓고 기차를 타고 등교 및 출근을 하곤 했다.


하지만 오다카 역에는 이제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2011년 3월 11일 아침 아이들이 타고 와서 주차해 둔 자전거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 서 있다.

한 때 학생과 직장인으로 붐비던 오다카 역.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

오다카 역 앞의 자전거들. 3년 이상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오다카에는 2013년 여름 이후 낮에는 거주가 허용됐다. 다만 밤을 이 곳에서 지내는 것은 아직 허용되지 않았다. 병원과 학교는 문을 닫은 상태다. 경찰서와 소방서는 문을 열었다. 하지만 대부분 상점과 사무실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직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완전히 복구되지 않은 상태다.


와다씨는 이런 오다카의 기차역 바로 앞에 co-working 공간을 열었다. 작은 사무실 하나를 얻어 10여명의 창업가들이 같이 일한다. 도쿄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던 와다씨는 쓰나미와 원전사고 3년 전인 2008년에 고향인 오다카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 곳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향에서 일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지진이 동네를 덮쳤다. 건물 여기저기가 부서지기는 했지만 견딜만 했다. 그러나 원자력은 달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이 공기 중을 떠다니고 있었다. 동네는 대피 명령을 받았다. 모두가 이 곳을 떠났다.


오염물 청소가 끝난 뒤 동네는 부분적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도 주민들은 돌아올 수 없다. 사업은 돌아올 수 있지만 누구도 유령 도시에서 사업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 이런 와중에 그는 희망의 코워킹 공간을 열었다. 가장 처음으로 돌아온 사업가가 됐다.


그는 현재 정부 보상금으로 주로 살아간다. 오염지역 바깥에서 살면서 오다카로 출퇴근한다. 한편으로는 멀리서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관련 업무를 처리하면서, 한편으로는 나중에 오다카에서 새로 시작할 사업을 구상하고 기획하는 중이다. 식당이 될 수도 있고, 유통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떤 이들은 교통 기반시설이 무너진 상태이니 운송사업을 해 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와다씨에게는 모두가 떠난 유령 도시가 새로 씨앗을 심고 키울 수 있는 주인 없는 밭처럼 보인다. 현재 정부 계획대로라면 2년 뒤인 2016년부터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 그 때까지 그는 기반을 닦으며 기다리겠다는 생각이다.


오다카의 코워킹 공간 '오다카 노동자 기지'

전문가들은 부정적이다. 거대한 복구가 모두 마무리되는 데는 십수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원자력발전소는 여전히 위험해 보인다. 피난명령을 받은 지역에 인구가 돌아온다고 해도 원래 인구의 4분의 1 가량밖에 되지 않으리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그것도 고령인구만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와다상은 오다카가 다시 과거처럼 생기가 넘칠 날을 기다린다. 어쩌면 한국전쟁 뒤, 모든 것이 무너진 곳에서 사업을 시작하던 삼성의 이병철씨, 현대의 정주영씨 같은 창업가들은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큰 성공을 거두는 기업가들은 늘 어떤 것도 불가능해 보이는 사막에서 모든 것을 걸고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와다 상의 생각은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은 편치 않았다. 엄청난 돈을 투입하고 거대한 건설공사를 벌여 이 모든 것을 과거로 되돌리는 것이 가장 좋은 복구 방법일까. 다른 방법은 없을까. 후쿠시마의 가을은 청명했다. 돌아오는 길은 빠르게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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