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경영학> 블루클럽, 블루오션에 뛰어들다


Missy S. from Flickr.com

IMF 구제금융의 충격이 한국을 뒤덮고 있던 1998년의 일이다. 경제부 기자였던 나는 매일 어렵고 무너지는 사업 이야기를 취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신문사 데스크에 놓여 있던 팩스에 남성전용미용실이라는 생경한 단어로 시작하는 한 장의 자료가 들어와 있었다. 5천원짜리 남성전용미용실 체인 1호점이 문을 열었다는 내용이었다. 남성에다 미용실에다 5천원이라는 충격적 조합에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건 외환위기를 극복할 우리 시대의 지혜라고 흥분하며 틈새시장을 노린 새로운 미용실이라고 소개하는 글을 썼다. 그게 블루클럽과의 첫 만남이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나는 처음 썼던 글에 썼던 틈새라는 단어를 후회해야 했다. 부끄럽게도 글을 쓴 뒤 한참이 지나서야 블루클럽을 직접 찾아가 머리를 자른 그날이었다. 그건 틈새시장 전략이 아니었다. 미용서비스의 가치를 근본적으로 혁신한 신상품이었다. 블루 오션 전략(blue ocean strategy)으로 많이 불리는 가치 혁신(value innovation) 전략의 교과서였다


틈새가 아니라 전체를 먹을 수 있는 사업모델이었다.


블루클럽의 가치혁신전략을 요약하면 이렇다. 이발소나 미용실이 소비자에게 주는 가치는 머리 손질이다. 이 가치가 생성되기까지의 가치 사슬(value chain)을 소비자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렇다. 1. 차례를 기다린다. 2. 의자에 앉아 머리를 자른다. 3. 머리를 감는다. 4. 헤어 드라이어 등으로 머리 뒷손질을 받는다.


기존 이발소 및 미용실들의 경쟁 전략은 첫 번째부터 네 번째 단계에 골고루 나타났다


소비자들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에 지루하지 않도록 편안한 소파와 더 많은 잡지와 더 좋은 텔레비전을 준비했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자를 때 편안하도록 뒤로 목을 기댈 수 있는 커다란 의자를 준비했고, 입담 좋은 미용사가 머리를 자르는 동안 귀를 즐겁게 해줬고, 이발소에서는 면도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서는 정성스레 머리를 감겨줬고, 미용사가 직접 헤어 드라이어와 젤을 들고 머리를 멋지게 매만져 줬다.


그런데 블루클럽은 이 경쟁의 법칙을 깨뜨렸다. 세 번째 단계 이후의 서비스를 아예 제공하지 않았다. 대신 그만큼을 돈으로 돌려줬다. 머리를 감겨주고 손질을 해주는 대신, 소비자에게 스스로 머리 감고 손질하는 품삯을 지불한 셈이다. 가치 사슬을 뒤흔든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얻은 시장은 결코 틈새라 부를 수 없었다. 7년 만에 체인점 수가 1천여 개 가까이로 늘어나 국내 최대 미용실 브랜드가 됐으니 말이다.


가치 사슬 분석으로 가치 창출 단계를 나눈 뒤, 각각의 가치를 계산해보면 성공 요인은 명확해진다. 미용 서비스에서 본론인 머리 자르기를 뺀 나머지 서비스의 가치가 얼마인지를 따져 보는 것이다.


5천원을 내고 머리를 자른 사람들이 3천원을 더 내고 머리 감기와 머리 손질 서비스까지 살 것인가. 그렇다면 그 모든 서비스를 8천원 이하로 제공할 수 있는 미용실은 경쟁력이 있다. 그렇지 않은데 미용실들이 전체 서비스를 8천원에 팔고 있다면, 5천원에 머리 자르기 서비스만 제공하는 미용실은 성공한다


블루클럽의 사례는 물론 후자였다. 3천원이나 내고 남의 손으로 머리를 감고 싶지는 않은 사람이 많았고, 그들은 블루클럽으로 발길을 옮겼다.


스웨덴의 조립식 가구 판매 업체 이케아도 가치 혁신으로 성공한 사례다. 스웨덴이나 한국이나 미국이나 가구 산업의 가치 사슬은 이렇다. 1. 가구점에 가서 가구를 고른다. 2. 사고 싶은 가구가 없다면 다른 가구점으로 간다. 3. 가구를 구입한다. 4. 가구를 배송, 설치한다.


조립식 가구가 등장하기 전, 가구 판매 업체들은 첫 번째와 네 번째 단계에서 경쟁했다


말 많은 점원들이 나서서 일단 가게에 들어온 소비자를 잡아 두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소비자가 들어와서 어떤 가구에 관심을 보이면 일단 가격 흥정부터 시작한다. 그 때부터 점원과 소비자 사이에는 제로섬 게임이 시작된다. 경쟁자가 바로 5미터 거리에 있는 가구점에게는 물론 결국 제 살을 얼마나 깎아 먹느냐의 게임일 뿐이다


그리고 그 집이 어디에 있든지 최대한 빨리 배송해주는 데 목숨을 걸었다.


이케아는 발상을 바꿔 가치 사슬을 다시 정의했다. 경쟁사의 살을 깎아먹으려 눈알을 부라리는 대신 소비자가 가구를 사기 위해 들이는 비용을 전체적으로 분석했다


해답은 배송에 있었다. 가구를 조립한 뒤 배송하는 것과, 아니면 나무판과 못을 일단 집으로 가져 가서 그 곳에서 조립해 설치하는 것 중 어느 쪽이 비용이 더 많이 들까? 당연히 전자가 월등히 비용이 많이 든다. 조립한 가구를 배송하려면 커다란 트럭을 사용해야 하지만, 조립하지 않은 가구는 개인용 자동차로도 쉽게 배송할 수 있다.


그래서 이케아는 네 번째 단계를 없애고 조립식 가구를 팔기 시작했다. 소비자가 직접 가구를 가져가도록 하되, 소비자가 가구 운반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보다 가구 값을 더 많이 깎아줬다


절약한 비용의 일부로는 상세한 제품 정보지를 만들고 매장 규모를 초대형으로 키워 소비자들이 여러 가구점을 돌아다니는 비용을 아낄 수 있게 했다. 이런 가치 혁신이 이케아를 연간 매출 130억 달러(13조원) 규모 기업으로 키웠다. 설립자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세계 6위 갑부로 떠올랐다.


블루오션 전략은 흔히 경쟁 없는 틈새 시장을 찾아 영리하게 끼어드는 전략으로 잘못 이해된다. 사실 문제는 그 시장을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다. 자신이 생산하는 제품에 얽매이지 않고, 소비자가 지불하는 비용과 얻게 되는 가치 전체를 거시적으로 돌아봐야 풀 수 있는 문제다


블루클럽과 이케아는 가치 사슬 분석과 가치 혁신을 통해 푸른 바다를 직접 만들어낸 기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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