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원재의 생각

'노량진 공시족'의 속마음

청년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빠지지 않는 화제가 ‘취업’이다. 정치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빠지지 않는 화제가 ‘일자리’이기도 하다. 그만큼 일자리는 시대의 화두다. 어디서 일하고 어떤 일을 하며 그 보상을 얼마나 어떻게 받느냐는 사실 삶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산업화 시절 서울이 만원이었던 이유


실은 일자리가 시대의 화두가 아닌 적은 거의 없다. 50여 년 전도 마찬가지였다. 1960~70년대, 봄이면 신문 사회면은 으레 젊은이들의 ‘무작정 상경’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서울 가면 돈 잘 번다는 소문에, 서울 간 이웃이나 친척이 가끔 고향에 돌아와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모습을 지켜보던 수많은 농촌 젊은이들이 열차에 몸을 실었다. 보따리 하나를 들고 서울역에 도착한 이들은 포주, 뚜쟁이, 야바위꾼들의 쉬운 먹잇감이 되기도 했지만 이들 가운데 일부는 공장에 취업해 산업사회 노동자로 신분을 바꿨다. 또 다른 일부는 그렇게 번 돈 모으고 모아 집을 마련하고 도시의 자산 소유자로 변신하기도 했다.


가발 공장에서, 옷 공장에서, 전자부품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농촌과 농업 중심 경제구조가 도시와 제조업 중심 경제구조로 변모하는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1966년 서울 인구는 380만 명이었는데 1960년대 초반의 240만여 명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었다. 사람들이 서울로 몰리고 있었다.


1965년 2월 <경향신문>은 그달 남대문경찰서에서 발견한 무작정 상경자가 하루 20명꼴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비슷한 시기 소설가 이호철은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제목의 신문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서울의 버스는 터져나갈 듯 만원이었고 택시는 합승을 일삼았다. 총인구 중 농가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60년 58%, 1965년 55%, 1970년 44%, 1975년 37%로 급격히 떨어졌다. 모두가 서울로 몰렸다.


그때 무작정 서울로 향하던 젊은이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욕망이 자리잡고 있었을까?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는 일자리다. 그럴듯한 일자리를 얻는 것은 그들에게 생계이자 명예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단어는 성장이다. 일자리는 그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는 통로였을 것이다. 평생 고향에 눌러앉아 농사를 지으며 살아야 할 운명에서, 낯선 사회에서 더 나은 경제적 삶을 살게 해줄 통로이기도 했다. 도시의 새롭고 풍부한 문화를 접하고 누리게 해줄 통로이기도 했다. 월급을 착실히 모아 저축해서 집 한 칸 마련하는 꿈을 꾸도록 해주는 통로이기도 했다. 그리고 모은 돈으로 자기 가게 한 칸 마련해 사업을 벌이는 사업가로 변신할 수 있게 해주는 통로이기도 했다.


성공한 소수를 열망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들이 가졌던 욕망은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그것과 닮았다. 정 회장은 16살 때 소 판 돈을 가지고 서울로 왔다. 그 소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조선·건설 기업으로 성장했다. 유명한 과학자, 기업인, 방송인 중에도 무작정 상경해 성공한 이들이 있다. 보따리를 싸들고 무작정 서울역으로 향하던 그때 청년들은 자신들도 정주영이 되고 세계적 과학자가 되고 연예인이 되는 꿈을 꾸었다.


물론 실제로 꿈을 이룬 것은 그들 중 일부였다. 대부분은 피와 땀만 바치고 영광은 영영 얻지 못했다. 하지만 역사는 성공한 소수를 기억했고, 자신만은 그 예외적 소수가 되리라고 믿던 청년들은 끊임없이 상경했다.


성장의 꿈이 동력이던 시대였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 무작정 농촌을 떠나 서울로 향하는 젊은이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2010년대의 신문은 서울역 대신 노량진으로 몰리는 젊은이를 묘사한다.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그들을 ‘공시족’이라고 명명한다.


그들도 일자리를 찾는다는 점에서는 50년 전 그들의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다. 하지만 마음속 욕구는 전혀 다르다. 안정의 욕망이다. 일자리는 성장의 기회가 아니라 안정의 기회다.


아버지 세대가 노량진에 몰린 공시족 청년들을 보는 눈은 그리 곱지 않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이거나 상관없이 그렇다. ‘너희들이 무엇이 부족하다고 편한 직업만 찾느냐’는 생각이 핵심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대학 진학률은 10명 중 2명이었는데 지금 20대는 10명 중 7명이다. 소득 수준도 네다섯 배 늘었다. 좀 위험한 일에 도전해볼 법도 하다. 그런데 가장 안전하다는 공무원 시험에만 몰리니 부아가 치밀 만도 하다.


사실 지금보다 학력도 소득수준도 훨씬 낮던 과거 부모 세대는 위험한 일에 오히려 더 많이 도전했다. 미지의 세계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막으로 가서 건물을 지었고, 종합상사에 들어가 수출을 해보겠다며 낯선 타향을 헤매다니기도 하며, 벤처기업을 무작정 창업해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병들기도 다치기도 가족과 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젊은이들의 발걸음을 손가락질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새로운 현상을 목격할 때 먼저 가져야 할 태도는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만일 그게 문제라면 질문으로부터 해결 방법 찾기가 시작된다. 만일 그게 새롭고 긍정적인 방향이라면 질문으로부터 확산 방법 찾기가 시작된다.


그래서 묻는다. 평균적으로 보면 과거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나은 상황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젊은이들이 노량진으로 몰리는 것일까? 이들 마음속 욕망은 무엇일까?


현재의 행복을 잠식하는 미래의 불안


서울역으로 보따리를 들고 무작정 상경하던 부모 세대와 노량진으로 책가방을 들고 몰려가는 자식 세대는 공통적으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일자리에 담긴 욕망은 전혀 다르다. 


부모 세대가 성장에 대한 욕망으로 상경했다면, 자식 세대는 안전에 대한 욕망으로 노량진으로 향한다. 이 시대 한국인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바로 경제적 안전이다. 특히 노후의 경제적 궁핍에 대한 불안은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게 만든다. 가히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이다.


이 불안은 좋은 일자리를 획득해도 쉽게 해소할 수 없다. 그런데 방법이 있다. 바로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물론 대박은 얻을 수 없다. 직업공무원이 되어서 수억원의 연봉을 벌고 이를 투자해서 부동산을 불려 자산가가 되는 일은 어렵다. 장차관이 되어서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할 사람이 나오기도 하지만 확률은 희박하다.


대신 쪽박도 없다.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된다. 정년 이후에도 노후에 연금이 보장되니 안전하다. 그뿐 아니다. 일하는 동안에도 안전하다. 공직사회는 어찌 보면 제도적으로 보장된 권리가 가장 안정적으로 보호되는 공간이다. 주요 정책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일부 고위직을 제외하면, 휴가든 육아휴직이든 출퇴근 시간이든 제도가 보장하는 권리를 행사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은 곳이다. 여전히 제도에 명시된 권리를 행사하는 일이 중소기업 직원 또는 비정규직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공직사회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매우 안전한 공간이다.


노량진으로 몰리는 발걸음은 현재 한국 사회가 ‘일자리’를 보는 시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일자리가 성장하는 삶으로 가는 통로였다면, 지금 일자리는 안전한 삶으로 가는 통로다. 성장의 꿈이 아니라 안전의 꿈이 동력인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저성장 시대의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노량진 공시 열풍의 의미는 경제적 안전에만 그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존중’에 대한 열망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직은 여전히 존중받는 지위다. 경제적 보상에 상관없이 ‘공공의 이익에 종사하는 일’로 여겨진다. 적절한 권위와 권한도 따라온다. 


동전의 다른 면에 있는 것이 ‘보람’이다. 일자리는 ‘일’과 ‘자리’의 합성어다. 일자리로부터 얻는 보상은 대부분 ‘자리’가 주는 돈이나 지위, 즉 외적 보상이다. 그런데 그 앞에 붙어 있는 ‘일’이 주는 보람과 자부심 같은 내적 보상도 있다. 공직은 그런 내적 보상을 지향하는 이들에게도 맞다. 속한 조직인 공공기관은 남을 위해 일하는 것이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윤 극대화가 사명인 영리기업과는 다르다. 조직의 사명이 상대적으로 사회적으로 존중을 받고 보람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게 한다.


이 모든 것에 앞서는 가치가 하나 더 있다. 진입 과정의 공정성이 보장된다. 공무원 시험 합격은 물론 어렵다. 그러나 대기업 입사 때처럼 해외 활동 스펙이 없어서 전전긍긍할 필요는 없다. 대형 로펌이나 글로벌 전략컨설팅회사처럼 부모의 배경이 도움이 되는 곳도 아니다. 재산을 물려받을 필요도 없고, 고위 관료가 전화를 걸어줄 필요도 없다. 그저 시험만 잘 보면 된다. 


단순하고 무식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경기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누구나 같은 출발선에서 경쟁한다는 점에서 가장 공정한 경기장이라고 맞받아칠 수도 있다.


이 시대 유일무이 공정한 경기장


공정성을 언급하니 거창한 이야기지만 실은 매우 단순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로지 나만의 실력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면 그것은 공정한 과정을 거쳐서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노량진에 몰린 공시족의 마음속 가장 깊이에 자리잡은 것은 이것 아닐까? 따지고 보면 경제적 안전도 사회적 존중과 보람도 공무원 일자리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곳은 지금 한국 사회에서 찾기가 어렵다.


노량진으로부터 읽어야 할 것은 젊은 세대의 비겁이 아니다. 경제적 안전, 일의 보람, 그리고 진입 과정의 공정성을 포괄하는 새로운 세대의 일자리 패러다임이다. 청년들은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일자리를 원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경제평론가


* <한겨레21> '먹고사니즘' 칼럼으로 게재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