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Urban. '종로밤거리' from Flickr.com
연말연시면 직장인의 밤은 더 길어진다. 걸핏하면 회식이다. 연말이라 모이고 신년이라 모이고, 오는 사람과 한잔하고 가는 사람과 한잔하며, 프로젝트가 성공해서 먹고 실패해서 또 먹는다.
한국 자본주의는 회식자본주의다. 인사도 투자도 구매도 마케팅도 밤에 오간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질펀하게 앉아 맞은편 상대와 맞부딪치는 술잔이 거래와 승진과 업무 협의의 마무리다.
삼겹살을 몇만번 뒤집어야 과장이 된다느니, 폭탄주를 몇잔 만들어야 임원이 된다느니 하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온다. 술을 섞고 술잔을 섞고 노래를 섞는 가운데 역사가 이뤄진다.
때로 이 자리는 보스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자리다. 때로는 경쟁 부서 능력자들을 폄하하는 뒷담화의 해방구다. 종종 이 자리는 취기를 빌려 특정 지역 출신, 특정 학교 출신, 특정 성별 경쟁자들을 싸잡아 비하하는 위험한 편견의 장으로 전환된다.
밤사이 마음속 은밀한 욕망을 나눈 이들 사이의 연대감은 아이디어와 문제해결능력을 ‘인간관계’라는 아름다운 단어로 덮으며 낮의 조직문화를 장악한다.
그러나 회식의 경쟁력은 낮아지고 있다. 세상이 달라져서다.
회식에서는 소수의 사람과 장시간 이야기하며 깊이 가까워질 것을 강요받는다. 이런 폐쇄적 관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줄어들고 있다.
일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우리 부서, 우리 회사 사람들 잘 안다고, 우리 고향 사람들 더 깊이 안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너무 많아진다. 오히려 다른 분야, 다른 지역 사람들과 더 많이 섞여야 창의적인 해결책이 나온다.
꼭 회식 이야기만이 아니다. 이제 폐쇄된 방 안에 서열에 맞춰 앉아 보스의 일방적 지시로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조직은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문제해결능력이 떨어진 폐쇄적인 모임은 자칫 은밀하게 서로의 특권을 확인하고 보호하는 뒷방으로 변질되기 쉽다. 정부의 국무회의든 회사 부서회의든 보스와 측근들의 전략회의든 모두 마찬가지다.
반면 서구 자본주의는 파티자본주의다. 의자가 없는 넓은 홀에서 와인잔 하나를 들고 돌아다니며 나눈 눈인사가 취업과 이직과 거래의 시작이 되곤 한다. 큰 테이블 위에 놓인 고향과 날씨와 음식 이야기를 나누면서 탐색은 시작된다. 짧은 시간에 서로 다른 아이디어를 교환하는 가운데 역사가 이뤄진다. 여기서는 우연히 만나 공통의 관심사를 발견한 사람들과의 ‘약한 인간관계’가 중요해진다.
‘약한 인간관계’가 중요해지는 데는 논리적인 이유도 있다. 적절한 거리는 객관성과 투명성을 유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 때문에 판단을 그르치지는 않으면서도 업무상 신뢰관계는 유지한다면 공적 관계로는 최적이다.
물론 강하고 깊은 인간관계도 영혼의 안식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온전한 사적 관계라야 한다. 공적 문제해결에 등장하는 것은 곤란하다.
파티는 세 가지 점에서 회식과 다르다.
첫째, 내가 먼저 서야 남을 만날 수 있다. 이야깃거리가 없으면 내 자리도 없다.
둘째, 맞으면 만나고 아니면 헤어진다. 걸어서 이동하면 그만이다.
셋째, 떠나도 된다. 더 마시라거나 끝까지 남으라고 붙잡는 사람은 없다.
‘쿨’하다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인정없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있겠다. 어쨌든 세상은 혼자 설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남들과 협력하며 그들 사이에 설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다양한 사람과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한다. ‘자리’를 찾는 사람보다는 ‘일’을 찾는 사람이 이끌 수밖에 없는 사회다.
이제 회식을 끝낼 때다. 마침 한 해도 저문다.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다. 홀로 선 둘이 만나는 것이다.” 새롭게 파티장에 들어서기 전 알아둬야 할 자본주의 제1기본법칙이다.
* 2014년 12월 31일치 <한겨레>에도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