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정조준하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중이다. 앞으로 수십년 동안 정치와 경제 전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전망이다.

 

경제적으로는 일하는 사람들의 노인 부양 부담이 커진다. 현재 생산인구 5명 가량이 노인 1명을 부양 중인데, 2050년이 되면 1.4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할 전망이다.

 

정치적으로는 늘어나는 노인 유권자를 의식한 정치가 강화된다. 제론토크라시, 즉 노인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한 지배체제가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국무회의는 50대도 끼어들기 힘든 분위기로 바뀌고 있고, 정당들은 노인층에 구애하는 정책을 궁리하느라 바쁘다.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데 정치적 힘도 줄어만 가는 청년층에게는 한숨만 쌓여간다.

 

기성세대 눈으로 보면 서울 노량진 고시학원 앞에 늘어선 청년들의 긴 줄은 이해하기 어렵다. 무엇이 그리도 불안해서 공무원 타령인가.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코앞에 두고 있고, 4명 중 3명 꼴로 대학에 진학하며, 꿈도 못꾸던 해외여행과 해외연수 경험을 너도나도 해보는 게 요즘 청년들이다. 그런데 힘들다니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청년들에게 물어보라. 힘든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계층 상승의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사회가 국민들에게 했던 ‘희망의 약속’들이 차례차례 깨어지고 있는데, 새로운 약속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게 현실이다.

 

대표적인 약속이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면 좋은 일자리가 기다릴 것’이라는 약속이다. 또 직장 가서 열심히 일하면 내집마련해 자산보유자가 될 수 있다는 약속도 있다. 이미 모두 깨어진 약속들이다.

 

2015 3월 현재 청년실업률은 IMF구제금융 시절만큼이나 높다. 대학진학률 75% 시대의 풍경이다. 평균적 월급생활자가 주택을 구입하는 일은 이제 꿈꾸기 어려운 일이 됐다. 무리하게 빚을 내 주택을 구매하더라도 집값이 과거처럼 무작정 오르지 않을 테니 빚더미에만 올라앉을 가능성이 높다.

 

대학 진학 때 경쟁이 치열했지만 대학 졸업 뒤에는 대체로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갔고, 몇 년이 다시 지나 집을 장만할 수 있었고, 집값이 오르면서 자기 힘으로 성공할 수 있던 과거 세대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다.

 

정말로 부모를 잘 만나 상속받는 것 이외에는 자산을 형성하고 계층상승을 이룰 방법이 없어졌다. 지난해 <21세기 자본론>으로 세계 경제학계에 파란을 일으킨 토마 피케티의 표현 그대로, ‘세습자본주의’이다.

 

어쩌면 청년들에게 공무원시험은 자신의 힘으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무너진 약속들 틈에서 마지막 남은 보루였던 셈이다.

 

이런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절망을 주는 사회에 성장은 없다. 이런 사회에서는 복지도 권리가 아니라 부담으로만 여겨지기 쉽다. 청년을 중심에 놓고 일을 펼쳐 나가야 정부에도 정당에도 시민단체에도 기업에도 희망이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 청년을 정조준해야 한다. 경제정책도 복지정책도 청년을 중심을 두어야 하고, 정치도 시민운동도 청년을 타깃으로 해야 한다. 그나마 기업이 가장 청년들을 중심에 두고 경영되는 듯 보이지만 갈 길은 멀다.

 

가장 먼저 시작해야 할 일은 청년들과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사회시스템을 고안하는 일이다.

 

지금 청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등지향적이다. 네명 중 세 명이 대학에 진학하고, 대부분 학창 시절 도시 생활을 경험하며,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으로 누구나 원하는 지식을 찾을 수 있는 세대다.

 

1960년대 전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만 해도, 대학진학률이 20%대에 불과하며 도시와 농촌으로 여전히 나뉘어 있었다. 그 때와 견주면 세대 내 지식격차는 크게 줄었다.

 

그런데 경제환경은 두 가지 점에서 과거와 매우 다르다. 첫째, 경제성장률이 낮아졌다. 둘째, 불평등도가 높아졌다. 즉 수준과 욕구는 그 어느 때보다도 평등한데, 결과는 그 어느 때보다도 불평등한 시대를 맞게 된다는 이야기다. 위험하다.

 

그래서 청년과 맺어야 할 새로운 약속은, 지속가능성과 공평성의 두 가지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그래야 높은 평등지향성과 달라진 환경을 맞춰가며 사회 통합을 유지할 수 있다.

 

지속가능성이란 경제, 사회, 환경의 세 가지 영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키는 새로운 성장 모델이다. 경제성장률이 낮아진 사회에서 무작정 속도를 요구하면 부작용만 커진다. 오히려 인권과 환경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의 품격을 함께 성장시키도록 요청해야 한다.

 

또한 모두가 비슷한 자격의식을 갖게 된 새로운 세대에게 ‘공평한 규칙’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같은 능력으로 같은 기여를 해도 대기업 소속이냐 중소기업 소속이냐에 따라 임금이 현저하게 다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직원이 되면 안정된 임금과 연금까지 보장받는데, 정부 일을 위탁받아 수행하는 비영리기관이나 사회적기업 임직원은 현장을 누비며 고생해도 저임금과 불안정성에 시달린다. 한 분야 전문성을 아무리 갈고 닦아도 대학교수 자리를 꿰차지 못한다면 낮은 강사료와 연구비를 견뎌야 한다.

 

기여하는 이들은 보상을 받아야 하고, 가진 지위 때문에 기여와 상관없이 더 큰 보상을 받는 구조가 있다면 깨어져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의 복원이다.

 

지속가능성과 공평성의 약속으로, 청년을 정조준하라. 그 길 밖에는 없다.

 

* 경제일간지 <뉴스토마토> 창간호(2015 5 11일치)에 실은 글의 원본입니다. 실제 신문에는 분량을 줄인 글이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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