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1일 참석한 '제 3회 한일미래대화'에서는 한일관계에 대한 우려가 희망을 압도하고 있었다.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의 겐론NPO가 양국 전문가 20여명을 초청해 일본 도쿄 UN대학에서 연 세미나였다. 한일수교 50주년의 하루 전날이었다.
우려의 근거는 지난 4~5월 동아시아연구원과 겐론NPO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였다. 이 조사에서 한국 국민 가운데 72.5%는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일본 국민 가운데 52.4%가 한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인식의 기저에는 역사문제가 깔려 있다. 한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국가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쪽에서는 과거 고노 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으로 여러 차례 사과했는데 한국 쪽의 요구가 지나치게 이어진다며 '사과 피로증'을 호소한다.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거론하는 순간 한국인들은 '군국주의'로 바로 연결시키며 경계심을 키우는데, 일본인들은 자신들은 평화국가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
이 모두가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에 바꿀 수 없는, '과거사'라는 무거운 짐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한일관계는 과거사를 적절히 타협한 뒤에나 호전될 수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물론 외교란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국가 사이에서 '실현 가능한 차선책'을 찾아 타협하는 일이다. 타협하며 차선을 찾아가는 것 자체가 외교의 본질이며 목적이다.
그러나 '실현할 수 없는 최선'을 지켜 나가야 하는 문제들이 있다. 과거사 문제가 바로 그런 것이다. 타협하려 나서는 순간 그 기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이들로부터의 반발로 오히려 타협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원칙을 견지할수록 오히려 다른 미래지향적 사안들에서 협력할 수 있게 된다. 과거사란 바로 그런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정부가 한일정상회담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연계한 전략은 그리 현명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적당히 타협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본질적으로 타협과 차선을 추구하는 행위와, 본질적으로 비타협과 원칙을 추구하는 행위를 묶어두니, 결과적으로 원칙을 타협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향하게 되어 있다.
오히려 과거사 문제는 최대한 원칙을 견지하면서, 미래와 관련된 문제는 그것대로 협력하며 추진하는 것이 올바른 외교였으리라는 생각이다.
50년 전과 비교한다면, 한일관계는 전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해야 하는 것이 맞다. 과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관계가 되어야 한다. 1965년 한일수교 당시, 한국에게는 두 가지의 절실한 현실적 필요성이 있었다. 하나는 경제적 지원이었다. 경제발전을 위한 초기투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른 하나는 안보협력이었다. 냉전시대 북한에 맞서고 있던 한국에게는 주변의 우군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 한국은 유동성이 오히려 남아도는 나라가 됐다. 게다가 냉전은 종식된 지 오래다. 과거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나라이던 시기 맺은 관계는, 이제 대등하게 만나 협력하는 관계로 진화해야 한다.
두 나라의 경제력이 대등해진 것과 동시에, 각 나라 내부에서 정부 및 미디어와 시민의 목소리가 대등해졌다는 점도 새로운 관계를 맺을 때 감안해야 한다. 몇몇 언론이 한국인과 일본인의 복잡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정제해 알려주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누구나 SNS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다. 한국 커뮤니티 사이트의 글이 바로 일본어로 번역되어 일본인들에게 알려진다. 일본 트위터의 메시지가 바로 한국어로 번역되어 한국인 사용자들 사이에 회자된다. 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갖게 된 시대다.
당연히 단기적으로는 혼란스러워진다. 시민들 마음 속에 있던 두 나라 사이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날 것 그대로 서로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는 두 나라 시민들이 더 깊이 만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결국은 집단지성이 발휘되며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시민들 사이의 직접 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대화를 경청하는 외교가 새로운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이 되어야 한다.
두 나라의 미래를 위해 디뎌야 할 첫걸음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한일미래대화'에서 나온 오구라 카즈오 전 주한 일본대사의 제안에 힌트가 있었다. "청년층의 교류를 지원하기 위한 자금이 필요하다."
한국과 일본 청년들은 공통적으로 사회적기업과 국제개발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국내에서뿐 아니라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세계시민으로서 책임있게 활동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필요가 있다.
생산기지를 개발도상국으로 옮기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제조업체들은 사회책임경영(CSR)의 모델을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동북아 기업들의 현지공장이 인권과 환경을 파괴하는 곳이 아니라 살리는 책임있는 기업이라는 공동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간 관계는 힘의 균형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 하지만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는 가운데 움직이기도 한다. 시민사회가 주도한다면 더욱 그렇다. 한국과 일본의 다음 50년은, 공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추구해 나가는 시대가 되어야 할지 모른다.
* 2015년 6월 24일 '허핑턴포스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