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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의 생각

중간지원조직은 왜 존재하는가

중간지원조직은 행정과 민간의 중간에 끼어 있는 조직이지요. 행정과 민간이 각각 자기 노릇을 하도록 돕는 조직인데요. 실은 없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지요. 중간에 끼어 있으면 아주 힘듭니다. 없어질 수 있다면 좋겠지요.”


발표자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희망제작소가 60여명의 지방자치단체장들과 함께 연 목민관포럼에서 연단에 올라선 한 중간지원조직 대표자의 발언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간지원조직을 대표하고 있는 이였다. 그의 목소리에서 함께일하는재단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문득 떠올렸다.


2007, 한겨레경제연구소를 처음 설립해 소장을 맡았던 시기였다. 연구소는 사회적기업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중요한 연구분야로 설정하고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당시 실업극복국민재단(현 함께일하는재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사회적기업에 대한 연구와 컨설팅을 같이 해보자는 연락이었다. 사회적기업육성법이 만들어진 뒤 시행되지는 않고 있던 때였다.


나는 당시 한겨레경제연구소의 관심사와 잘 맞는 주제라고 판단했다. 재단의 실무자들과 함께 전국의 사회적일자리 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 뒤 이 현장들은 인증 사회적기업이 되었고, 초기 사회적기업으로 활동하게 된다. 또 재단과 함께 교육사업을 시작해서, 처음으로 사회적기업가 MBA’를 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고 뒤돌아보니, 당시 재단과 함께 하던 일이 초보적 형태의 사회적기업 중간지원조직업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중간지원조직이 어떤 곳이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도 명확하지 않던 때였다.


매우 인상적인 순간이 이어졌다. 당시 재단에서 하던 일을 형식적으로 보자면, 분명 정부의 에이전시 역할이었다. 원칙적으로는 정부가 행정을 통해 해야 하는 일로 보였다. 그러나 실험적 주제인데다 전국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라 정부가 직접 하기 어려워 보이는 일이었다. 게다가 불확실성이 매우 큰 일이었다. 행정조직이 처리하기 가장 곤란한 일이 바로 불확실한 일이다. 말하자면 정부가 해야 하지만 정부가 하기 어려운, 그런 곤란한 일을 재단이 맡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묘하게도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은 아주 역동적인 활동가들처럼 보였다. 관리자가 아니라 기업가처럼 열정적으로 일을 대하는 이들이었다. 외형상 정부의 일을 대행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매우 독립적으로 움직였다. 외형상 정책을 집행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현장의 이야기를 정책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하며 일했다.


어찌 보면 기묘한 외형이다. 당시 재단은 정부기관도 아니었고, 민간을 대표하는 대표성을 지닌 기관도 아니었다. 하지만 분명히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민간을 대표하면서 하고 있었다.


이게 바로 중간지원조직이다.


그런데 그 중간지원조직 활동가 가운데 대표적인 이가 전한 피로감의 실체는 무엇일까. 현장 중간지원조직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행정에서는 손발처럼 부리려고만 하고, 현장에서는 권위적이고 경직되어 있다고 비판한다. 그야말로 중간에 낀 이들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기다.


2007년 이후 한국에서 사회적기업 육성은 하향식으로 진행됐다. 한국사회에 뿌리내린 대부분의 다른 정책들처럼 말이다.. 위에서 정책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를 아래로 집행하면서 전국에 사회적기업 붐이 일어났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드시 하향식으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원래 전국 각지 풀뿌리 지역사회에 잠재되어 있던 사회적경제의 싹을 발굴해 키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과정을 가능하게 만든 곳이 바로 당시의 재단과 같은 중간지원조직들이다.


중간지원조직의 개념은 여러 나라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인프라스트럭쳐조직 (Infrastructure Organization)’이라는 1800년대 후반 급증한 지역자선단체(Charity Organization Society) 활동의 중복성을 막기 위해 조율하고 지원하는 기관이 등장했다. 이후 인큐베이터, 중간지원기관, 경영지원기관 등의 이름으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수혜자들의 정부나 요구를 조정하고 부당한 이익을 받는 이들을 고발하는 역할을 하다가, 나중에는 자원과 기술을 연결하는 일, 교육 및 컨설팅을 제공하는 일, 제도와 법률의 적용과정을 조정하는 일, 조사연구 및 입법로비활동 등으로 역할이 확장된다.


미국뿐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에도 이런 역할이 있다. 영국에서는 우산조직(Umbrella Organization), 지역개발기관(Local Development Agency)으로 불리는 중간지원조직이 있다. 사회서비스에서 자원봉사의 역할이 커지면서 정부 및 지방정부가 민간과 소통하는 일을 돕는다. 일본에는 중간지원조직 또는 경영지원조직이라는 이름의 기관이 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복구 과정에서 자원봉사활동이 확산되며 풀뿌리 시민운동이 성장하고 그 결과로 다양한 중간지원조직이 생긴다. 기본적으로는NPO 활동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설립된 NPO지원센터가 일본 중간지원조직의 초기모델이다.


이렇게 세계적으로도 역할이 분명하고, 한국에서도 분명 대단한 역동성을 지니고 있던 중간지원조직들이 왜 지금 피로감을 느끼고 있을까? 크게 두 가지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첫째, 전문성의 고갈에 이유가 있다.

지식이 대중화된 시대다. 아무리 날고 기는 이들이 중간지원조직에서 일하더라도 빠르게 변하는 현장의 흐름을 따라잡기 어렵다. 그 변화에 대응하는 지식을 갖추기란 더욱 어렵다. 그러다 보니 행정으로부터도 현장으로부터도 전문성에 대한 불만이 쏟아져 나온다. 실력을 더 갖추란 이야기다.

하지만 중간지원조직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있다. 특정 의제가 도입되는 초기에는 외국 사례, 외부 자원과의 연결 등에서 중간지원조직이 우위를 점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도 지속적으로 행정조직과 현장 조직을 앞서기는 쉽지 않다.


둘째, 조직 운영의 경직성이 높아지는 데도 이유가 있다.

시간이 갈수록 경직성이 높아지는 게 관료조직 본래의 특성이다. 중간지원조직은 제도적으로는 정책전달자 기능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조직 설립 초기에는 행정에게도 정책 방향이 구체적으로 서 있지 않으므로, 오히려 중간지원조직에 운신의 폭이 넓다. 의지만 있다면 유연한 조직 운영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책 방향은 점점 더 구체화된다. 전달자의 유연성을 발휘할 틈은 줄어든다. 당연히 조직은 경직되고 현장의 불만은 커지게 되어 있다. 중간지원조직뿐 아니라 모든 조직에 일반적으로 생기는 현상이다.

이런 두 가지 이유에서 중간지원조직은 그 사명과 역할에 위기감을 느낄 수 있는 상황이다. 자칫하면 조직이 행정전달체계에 완전히 편입되어 정책전달자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것으로 굳어질 수도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첫째, 전문성을 보강해야 한다. 결코 전문인력을 내부에 채워넣으라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내부의 전문인력은 줄여야 한다. 중간지원조직 내부에는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서비스 수요를 정의할 수 있는 헌신적인 이들이 자리잡는 것이 맞다. 특별한 전문적 역량을 가진 이들은 외부에 있어야 한다.

사회적경제 및 비영리 영역도 다양화, 전문화되고 있다. 필요한 전문성의 성격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이 모두를 내부에 갖출 수는 없다. 내부에서는 오히려 이런 수요를 계속 파악하고 그에 맞는 외부 전문성을 발굴해 연결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 서비스 코디네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둘째, 유연성을 유지해야 한다. 단순 정책 전달자가 되는 방향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중간지원조직들이 정부 정책의 단순 전달자로 변질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비대하고 비정상적으로 영향력이 큰 한국의 관료 조직은 거대한 촉수를 지닌 괴물로 변화해 가고 말지도 모른다

정부 보조금 전달에 의존하던 수많은 지역 민간조직들이 결국은 집권당의 정치조직이 되어가는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일본 관료조직은 결국 괴물이 되고야 말았다. 이에 따라 일본은 경제성장을 한국보다 먼저 이루고도, 시민사회 역동성은 한국보다 크게 떨어지는 사회가 됐다.


행정조직은 끊임없이 규정과 절차를 강화하면서 민간을 지배하려는 속성을 지니게 되어 있다. 이를 중화시키고 유연화시키는 게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다.

전문가연 하지 말고, 정책 수요자의 대표자가 되어라. 어떤 경우에도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을 확보하라.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된다. 한국의 중간지원조직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떠올려야 하는 생각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함께일하는재단이 사회적기업 지원정책 초기에 가졌던 생각을 다시 떠올려 보면 된다.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경제평론가)


* 함께일하는재단 발행 <함께일하는사회> 제 22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