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앞에는 맛있는 단골빵집이 있다. 그 집이 어느 날 문을 닫아 걸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기업 브랜드 빵집들 사이에서 자기만의 간판으로 잘도 버티던 집이었다. 친절한 주인 아저씨 표정이 어른거렸다.
다행히 눈 밝은 우리 아이가 기쁜 소식을 알려줬다. 실은 새로운 종류의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를 갖추느라 잠시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다. 곧 다시 문을 연다고 했다. 돌아가 자세히 보니 공사중인 빵집 유리창에는 몇 주 뒤 다시 문을 연다고 써붙여져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몇 주 뒤 돌아온 빵집의 인테리어는 훨씬 더 세련되고 멋스러워졌다. 건강에 좋다는 발효빵도 들여왔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모카빵도 제 자리를 찾았다. 이런 정도라면 서울의 가장 부자 동네에 가도 어울리겠다는 탄성이 나왔다.
그런데 눈을 돌려 보니 옆 동네에도 고급 동네 빵집들이 생겼다. 팥과 버터를 넣어 새로운 빵을 개발한 빵집도 있었다. 바게뜨가 맛있다는 또 다른 빵집도 자리를 잡았다. 생활반경 안에 고급스런 동네빵집이 세 개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훌륭한 동네에 산다는 자부심이 느껴진다. 몇 년 사이 생긴 변화다.
그런데 무엇이 이들을 고급스럽게 만들었을까? 투자다. 무엇이 동네 빵집 주인들이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게 만들었을까? 물론 돈과 시간이 있어야 한다. 아이디어와 기술도 있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기회와 비전이다.
2013년 2월 동반성장위원회는 동네 빵집 반경 500m 안에는 대기업 빵집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고 매장 수 증가도 전년 대비 2% 내로 제한하도록 합의했었다. 그 뒤 동네 빵집 수는 크게 늘었다. 기존에 있던 빵집에도 내 단골집에서처럼 투자가 일어났다.
대기업 브랜드 빵집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동네 빵집들에게도 기회가 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빵집 주인들이 투자에 나섰으리라. 빵을 잘 만들기만 하면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으리라는 비전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중앙에서 만든 냉동 생지를 그대로 굽는 대기업 브랜드 빵집보다 더 나은 빵을 만들기 위해 더 투자하고 더 많이 노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동네에는 더 다양한 빵이 등장했다. 혜택은 나같은 소비자가 보게 됐다.
그런데 올해 동반성장위원회는 동네 빵집 보호 규제를 일부 완화했다. 일부 신도시에서이지만 결과에 따라 전국으로 확대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용실의 경우 충북 오송 지역에서 대기업 등 법인도 진출할 수 있게 풀었다. 냉동식품을 만드는 CJ가 빵집을 차린 것처럼, 화장품을 만드는 LG가 미용실을 연다고 한다.
여기가 무슨 배급사회인가. 이 동네에서나 저 동네에서나 우리는 CJ가 기획한 빵을 다같이 먹고 LG가 선택한 헤어스타일로 머리를 하고 다니게 되는 것일까. 이런 규제완화가 정말 투자와 혁신으로 이어진다고 믿는 것인가. 가격경쟁으로 다들 값싸게 비슷한 제품을 소비하게 되고 마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기업가정신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영역 사이 울타리를 쳐야 할 때가 있다. 사자와 소를 한 우리에 넣어 두고 소에게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초원을 살리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제품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내 단골 빵집 주인은 진짜 기업가다. 8년 전에는 ‘내 빵을 직접 굽겠다’면서 프랜차이즈 빵집 간판을 내리고 자기만의 간판을 걸더니, 또 사고를 쳤다. 이렇게 사고치는 이들이 늘어나야 동네가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진다.
빵을 사먹는 게 일상인 나와 빵을 굽는 게 생계인 빵집 주인 아저씨는 그럴 때 함께 이길 수 있다. 이게 대방동에 사나 대치동에 사나 똑같은 빵만 먹어야 하는 이 이상한 도시를 조금이라도 바꾸는 방법이다.
이 빵집이 어딘지는 밝힐 수 없다.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던킨도너츠는 아니다.
* <한겨레> 2016년 3월 2일치 신문에도 게재한 글입니다.
** <조선일보> 한현우 기자의 칼럼 '간장 두 종지'와 비슷한 구성에 다른 관점을 담아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