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과 알파고 사이 세기의 바둑 대결을 지켜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최근 접했던 한 통계를 떠올렸다. 2015년 20대, 30대 가구소득이 사상 최초로 줄어들었다는 조사 결과였다. 어쩌면 알파고가 20대, 30대의 경제적 안녕과 충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게 걱정하고 있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에 따르면 가구주가 39세 이하인 2인 이상 가구의 지난해 월평균 소득은 431만6천원으로 그 전 해보다 0.6% 줄었다.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경기가 나빴다고 하지만 평균소득은 꾸준히 상승했다. 20~30대면 그것도 왕성하게 일하고 근로소득을 벌어들일 때 아닌가.
실제로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시작하는 연령대인 20∼30대 가구의 소득이 줄어든 것은 2003년 가계동향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20∼30대 가구 소득 증가율은 2011년
5.2%, 2012년 2.9%, 2013년 7.4% 등으로
부침은 있지만 증가세는 유지했었다. 그러나 2014년 0.7%로 쪼그라들더니 급기야 지난해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다른 세대 소득은 줄지 않았다. 오로지 20~30대만 줄었다. 지난해 40대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95만9천원으로 2.8% 늘었고, 50대 가구는 505만5천원으로 2.0% 늘었다. 60대 이상 가구 소득(300만4천원)은 6.8% 늘어 증가 폭이 가장 컸다.
왜 2030세대의 가계소득이 줄었을까?
기본적으로는 고용 불안이다. 지난해 청년 실업률은 9.2%로 역대 최고 수준을 보였다. 여기다 고용이 된다고 해도 질이 좋지 않았다. 취업을 해도 비정규직 일자리이거나 생계형 창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해 학교를 졸업하거나 중퇴하고 첫 직장을 잡은 청년층 400만명 가운데 20.3%(81만2천명)는 1년 이하의 계약직이었다. 신규 채용 청년층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은 지난해 8월 현재 64%였다. 2008년 54% 수준이었으니 그새 10%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심각하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런 현상이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젊은 세대의 소득 지체 현상은 주요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영국 <가디언>이 ‘LIS 국가간 데이터센터’의 자료를 분석해 보도한 내용을 보면, 선진국에서도 일하는 젊은층의 소득은 줄고 은퇴 고령층의 소득은 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선진국에서 공통적으로 진행된 경제환경 변화가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게 <가디언>의 분석이다.
LIS는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등 8개 선진국의 세대간 소득을 분석했다. 그런데 1980년대와 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이른바 ‘밀레니얼 세대’ 의 소득 증가율은 전체 인구의 평균 소득 증가율에 비해 대부분 뒤처졌다. 은퇴 고령자들은 상대적으로 소득이 늘었다.
지난 30년 동안 그 나라의 평균 가구 가처분소득 증가율을 기준으로 보면, 영국의 25~29세의 소득 증가분은 평균 소득 증가분보다 2% 뒤처졌다. 그런데 영국의 65~69세는 62%, 70~74세는 66%나 앞서갔다. 젊은 층의 소득은 평균소득보다 천천히 늘었고, 노인층의 소득은 평균소득보다 빠르게 늘었다. 스페인 미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도 젊은층 소득 증가분은 평균소득 증가분을 밑돌았고 노년층 소득 증가분은 평균을 웃돌았다.
젊은층의 소득이 가장 크게 뒤쳐진 나라는 이탈리아다. 이 나라는 노인지배체제를 뜻하는 ‘제론토크라시’로도 악명을 떨친다. 고령자가 사회 주요권력을 장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탈리아 젊은 층의 소득 증가분은 평균보다 19%나 뒤처졌지만 65~69세는 12%, 70~74세는 20%나 늘었다. 특히 미국과 이탈리아에서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실질소득이 30년 전에 견주어 거의 늘지 않았다. 나머지 세대는 그 동안 상당폭 늘어났다.
30년 전 대신 최근 숫자를 한번 살펴보자. 미국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7개국의 밀레니얼 세대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실질소득이 계속 줄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에서
30대 이하 세대는 은퇴자들보다 가난하다. 미국의 30살
이하 평균은 65~79살 평균보다도 소득이 적다. 영국에서
은퇴자들의 가처분소득은 젊은층의 소득보다도 3배나 빠르게 늘었다. 프랑스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연금생활자들이 50대 이하 가구들보다도 더 많은 가처분소득을 벌어들였다. 이탈리아에서는 평균적인 35살 이하 국민이 80살 이하의 평균적인 연금생활자보다도 소득이 적어졌다.
한국의 젊은 세대만 고생하는 게 아니라니 안도라도 해야 하나? 거꾸로 더 걱정해야할 것 같다. 어쩌면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약간의 노력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닌지도 모른다. 인류 전체가 매달려 획기적인 해법을 찾아야 하는 고차방정식에 맞닥뜨린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금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현상, 즉 일하는 젊은층이 은퇴 고령층에 비해 실질소득이 뒤처지는 현상은 증가율이 뒤처지는 현상은 전쟁이나 대형 재해 등의 예외적인 때를 빼면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이다. 그것도 선진국 전체가 공통으로 맞닥뜨린 문제라니 더 충격적이다.
젊은 세대의 특성은 주된 소득이 근로소득이라는 점이다. 40대를 넘어서면서 늘어나는 자본소득이나 사업소득 등이 젊은 세대에는 비중이 낮다. 또한 노령층이 가진 연금소득 등 이전소득이 젊은 세대에는 거의 없다.
조금 단순화해서 들여다보자. 젊은 세대의 소득 지체 현상은 어쩌면 근로소득의 위기인지도 모른다. 더 구체적으로 보자면, 젊은층과 노령층 중 노령층 소득이 더 커지고 안정적이 되고 있다면 이는 근로소득에 비해 연금소득이 더 커지고 안정적이 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선진국에서 고령층 연금생활자들의 실질소득이 높은 것은, 이들의 소득은 안정적이지만 젊은층의 소득은 불안정해지고 줄어들어 생긴 현상이다
어쩌면 경로는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근로소득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미 노동시장에서 일정한 지위를 획득한 40~50대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등을 통한 정치력과 조직 내에서 이미 획득해 둔 의사결정권을 바탕으로 그 불안정성을 받아안지 않고 외부로 떠넘긴다. 그 불안정성은 따라서 고스란히 30대 이하 노동자들에게로 넘어간다. 한편 60대 이상 고령층은 복지제도를 둘러싼 오랜 싸움의 전리품으로 이미 확보해 둔 안정적 연금소득을 유지하거나 강화한다. 결과적으로 30대 이하 노동자의 소득은 점점 더 불안해지고 나머지는 상대적인 안정성을 유지한다.
그런데 왜 근로소득이 불안정해지기 시작했을까? 이 질문이 바로 이세돌과 정면으로 맞붙은 알파고와 세대간 소득격차 통계 사이의 접점이다.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인간의 노동을 본격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노동시장에서 높은 보상을 받던 고급 노동력을 대체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노동시장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노동자가 처한 상황은 점점 더 열악해진다. 특히 신규진입 노동자, 즉 젊은층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임금 인하 압박이 세진다. 그러다 보니 이 계층의 주류를 이루는 젊은 세대의 실질소득이 정체 또는 하락의길을 걷게 된다. 인간이 노동력을 팔아 임금을 받아 살아가는 모델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세대간의 불평등은 사회에서 더 깊은 불평등을 가져온다. 자신의 소득만으로 부를 축적하기가 어려워진 상태이므로, 젊은 세대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부가 있어야만 재산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상속 여부가 계층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이 된다. 이른바 금수저, 흙수저론이 나오게 된다.
근로소득체계가 깨어져 간다면 여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문제가 풀릴까? 임금을 일에 대한 정당한 대가로만 생각하던 이들에게는 난감한 일이다. 로봇으로 인해 많은 일이 대체되면서, 필요한 일을 찾고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과업이 됐다. ‘정당한 대가를 받는 일자리’ 자체가 희귀한 현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 제 신간 <아버지의 나라, 아들의 나라>입니다.
영국의 유명한 불평등 연구자인 앤서니 앳킨슨 런던정경대학 교수는 모든 성인에게 ‘기초자본’을 제공하자는 제안을 한다. 앳킨슨은 <21세기 자본론>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 파리정경대 교수의 스승으로도 불린다. ‘괜찮은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소규모 사업이나 자신의 역량 강화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소규모의 자본을 성인이 되는 순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사회의 상속’ 개념의 기초자본 제도를 도입하자는 제안이다.
앳킨슨은 ‘상속’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전 세대가 축적한 자산은 다음 세대 모두가 나누어 가질 권리를 갖고 있다는 관점이다. 상속의 불평등성이 문제라면, 모든 사람이 같은 금액을 상속받게 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은 출발선에 서게 되지 않겠느냐는 아이디어다.
실제로 2005년 영국 정부는 비슷한 효과를 가진 정책을 도입하기도 했었다. 영국은 당시 ‘어린이신탁기금’(Child Trust Fund)을 설치해, 2002년 9월 1일 이후 태어나는 어린이들에게 250파운드를 모두 지급하고 세금혜택이 있는 기금 계좌에 넣도록 했다. 부모는 자녀의 계좌에 추가로 기여금을 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7세가 되는 시점에서 250파운드를 더 넣어주었다. 이 기금은 해당 어린이가 만 18세가 될 때 인출해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작은 액수이기는 하지만 성인이 되는 순간 자산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하는 제도였다. 앳킨슨은 이보다 훨씬 더 큰 의미있는 규모의 자산을 성인기 진입과 동시에 제공하자고 제안한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녹색당 등의 제안도 비슷한 맥락이다. 자동화와 로봇의 노동 대체로 충분한 보수와 안정성을 제공하는 ‘괜찮은 일자리’ 자체를 제공하기 어려워진다면 아예 임금이 아닌 기본소득으로 살아가는 사회를 디자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대체하고 나면, 그 수많은 바둑 기사들의 일자리는 사라지고 마는 것 아닌가.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 질문이 지난해 소득이 깎이고 경제적 고통과 불안 속에 있는 대한민국 20~30대 미래세대 위에 다시 한번 겹쳐진다. 세기의 바둑 대국을 지켜보고 나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부쩍 더 든다.
* <한겨레21> '먹고사니즘' 코너에도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