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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의 생각

애자일 방법론과 정책결정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숙원사업이던 이른바 ‘오바마케어’가 미국인들 앞에 첫선을 보였던 것은 2013 10 1일이었다웹사이트를 통해 훨씬 더 범위가 넓어진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직후였다.


그런데 재선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엄청난 권력을 등에 업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개발한 사이트를 여는 순간, 대혼란이 시작됐다. 사이트는 순식간에 다운되었다. 건강보험 제도 자체에 대한 논란도 컸지만, 어이없게도 웹사이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이 야심적 정책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by Pete Souzaby Pete Souza

오바마케어 웹사이트 구축은 한국 돈으로 6천억원 이상의 세금이 투입되고 55개 소프트웨어기업이 동원된 거대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이른바 ‘워터폴 모델’이라는 전통적 소프트웨어 구축 방식으로 개발됐다. 처음부터 완벽한 논리를 세운 뒤, 그 논리를 차례차례 구현하는 방식으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하향식 방법론이다. 완벽한 논리를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인력을 투입해 오랜 기간 동안 일을 진행하게 된다.


웹사이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오바마케어는 망신살이 뻗쳐도 이만저만 뻗친 게 아니었다. 그래도 웹사이트의 문제는 수습되어야 했다.


그때 동원된 게 ‘애자일’(agile)이라는 방법론이다. 워터폴 모델과는 달리 이 방법론은 처음부터 완벽한 논리를 세우지 않는다. 엄청난 예산과 긴 기간을 상정하지도 않는다. 소규모 팀을 구성한 뒤 그 팀에 완전한 자율성을 주고, 일단 목표한 과제를 2~4주 동안 집중해 완료하라는 지시만 한다. 



불완전하더라도 일단 완성해 내놓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반응을 봐서 다시 보완한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냥 하게 한다. 그 과정을 계속 반복하는 상향식 방법론이다.


애자일 방법론을 도입하면서 오바마케어의 거대한 혼란은 수습되어 간다. 완전하고 거대한 하향식 방법론보다, 불완전하더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 실험해보면서 계속 수정하는 상향식 방법론이 결과적으로 더 나았다. 이 교훈을 토대로 오바마 정부는 정부의 소프트웨어 조달체계를 유연한 방식으로 전면 개편하는 개혁안까지 추진하게 된다.


나는 이 방법론은 정책결정과정에서도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최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정책을 둘러싸고 다툼이 잦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의 정책실험을 막아선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시의 청년수당이 그랬고, 성남시의 청년배당도 그렇다. 중앙정부 정책과 겹치거나 충돌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는 여전히 사전에 논리적으로 완벽한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워터폴’ 사고방식이 아닐까.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가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계획한 뒤 그 계획에 들어맞는 정책만 실행해서 해결된다면 이미 해결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지금은 어쩌면 애자일 방법론에서처럼, 누구든 청년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선다면 그 방식대로 해보도록 장려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중앙정부가 해야 할 일은, 수많은 실험을 허용한 뒤 그 중 성공적인 것을 뽑아올려 전체에 해당되는 정책으로 진화시키는 게 아닐까.


성과연봉제를 둘러싼 충돌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일괄적으로 성과연봉제를 강제하는 대신, 공공기관에게 내야할 성과만 명확하게 정의해 주고, 거기에 맞는 임금체계와 운영방식을 스스로 실험하도록 하는 방식은 시도해볼 수 없었을까.


상황이 복잡하고 환경이 급변할수록 애자일 방법론이 더 효과적이라고 한다. 지금이 어느 때보다도 그럴 때가 아닐까? 정부가 솔직하고 민첩하게 문제해결을 모색해야 할 때다. 과거 방식을 고집해서는 이길 수도 성과를 낼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