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iel Oines
공유경제가 한참 논란 중이다. 카셰어링이나 셰어하우스 같은 곳, 즉 자산을 새로 취득하거나 만들어 소유하지 않고 벌이는 비즈니스를 공유경제 비즈니스라고 대체로 부른다. 나는 공유경제를 옹호해 온 사람인데, 최근 <피로사회>로 유명한 한병철 교수가 공유경제를 심하게 비판하는 글을 썼다. 한 교수의 글은 거칠고 단정적이며 대안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글이라 마음이 편하지 않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공유경제에 대해 한번 성찰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에, <워싱턴포스트>에서 좋은 기사를 하나 읽었다.
공유경제가 처음 주목받은 이유는 ‘소유’가 아니라 ‘접근’을 통해 소비활동을 한다는 새로운 개념 때문이었다. 제레미 리프킨이 <한계비용 제로 사회>에서 이야기한 내용이다.
소유하지 않으니 지나치게 많은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게 된다. 새로 생산하지 않아도 비즈니스를 할 수 있으니 자원을 덜 사용하며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소유는 삶을 자산 위에 고정시키지만 접근은 늘 철회할 수 있는 것이니, 삶이 더욱 가벼워지고 자유로워진다. 이런 게 매력이었다.
공유경제가 ‘접근’ 경제의 사회적 가치를 강조한 버전이라면, 렌털 비즈니스는 어쩌면 이런 ‘접근’ 경제의 자본주의적 측면을 강조한 버전이다.
이런 와중에 <워싱턴포스트>의 Chico Harlan이 참 좋은 기사를 썼다. 가진 게 없고 소득 전망이 불확실한 미국 빈곤층이 가구부터 전화기까지 모두 렌털로 이용하며 살아가는 사례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기사다. 소유하기 싫어서 공유할 수도 있지만, 소유할 수 없어서 공유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고 이 경우 비싼 댓가를 치러야 한다.
기사에 소개된 사례에서 애보트는 너무나 갖고 싶은 1500달러짜리 소파를 집에 들여놓기 위해서 렌털서비스를 이용한다. 2년 동안 매주 정해진 금액을 내면 2년 뒤에는 소유할 수 있게 되는 계약조건이다. 주 단위로 계속 낼 경우 총 4150달러를 내게 된다. 애보트는 망설이지 않고 계약한다.
기사에서는 이 사례를 통해 미국 빈곤층과 ‘접근’경제와의 관계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렌털비즈니스는 신용이 없는 빈곤층에게 사실상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물건을 사게 하는 사금융업을 하고 있는 셈이다. 빈곤층은 일시적으로 생긴 수입으로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따지고 보면 자산을 소유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경제는 늘 공유경제이고 ‘접근’의 경제였다. 남의 자산으로 사업을 해야 했고 소유보다는 ‘접근’을 통해 소비해야 했다. 지금까지의 자본주의는 이런 사람들에게 더 비싼 댓가를 지불하게 하면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었다.
공유경제는 중요한 흐름이라고 보고 지지하지만, 앞으로 공유경제가 직면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그나저나 이런 보도를 보면 미국 신문이 아직 살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정확한 사실만을 통해서 자본주의의 매커니즘과 빈곤의 문제, 그리고 소유의 문제까지 생각하게 해준다. 현장에서 개인의 가계부를 들여다보며 기사를 썼으니, 노력은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
기사 원문은 아래 링크에 있다.
Rental America: Why the poor pay $4,150 for a $1,500 sofa
이런 문장, 정말 매력적이다.
“A rent-to-own store provides a front-row seat to observe the bottom of the economy.”
이 맛을 살려 한글로 번역하기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