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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의 생각

이 4류 기업들을 어찌할 것인가

90대 아버지가 60대 아들의 뺨을 때리며 호통쳤다. 60대 아들은 그 자리에서는 고개를 숙이다가 돌아가서는 아버지 회장을 밀어내고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 시도한다. 그 사이 그 아들의 형은 아버지의 뜻이라며 동생을 밀어내려 한다. 아버지의 육성이 언론에 공개되고, 장남과 차남은 각각 인터뷰를 하며 상대방을 비난한다.


1960년대 동네 구멍가게나 시장바닥 조직폭력배들 사이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직원 수 17만 명, 연 매출 83조원의 한국 5위 재벌그룹의 최고의사결정권자들 사이에 2015년에 벌어진 일이다.


누가 결정권을 갖는가는 근대사회 핵심적 질문이다. 의사결정과정이 투명하고 명확한 제도들이 근대사회의 승리자가 됐다. 그 제도들이 종합된 형태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다. 대부분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제도들이 유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주식회사제도는 그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수 있어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조직형태가 됐다. 주주들이 결정하면 된다. 주주는 그 결정을 대표이사를 포함한 이사들에게 위임한다. 물론 대표이사가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 그를 해임할 권리도 주주들에게 있다.


주주들은 그 권리를 얻기 위해 기업에 지분투자를 한다. 가진 지분만큼 권리를 행사하고, 가진 지분만큼만 책임을 진다. 이른바 유한 책임의 원리다. 기업이 성공한다고 해도 무한히 권리를 누리는 것이 아니며, 실패한다고 해도 약속한 만큼만 책임을 진다. 주주는 투자금은 날릴 수 있지만 자기 재산까지 차압당하지는 않는다.


임원들은 경영 과정에서 위임받은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고, 성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 그 책임의 형태는 연임이나 해임이다. 주주가 보기에 잘 경영되었다고 평가받으면 연임하게 되고, 그렇지 않다면 해임된다.


직원들의 경우 임원들의 지시를 받아 업무를 수행한다. 경영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권리는 제한되어 있다. 하지만 직원들도 기업 경영 성과에 영향을 받으니 책임이 따르는 셈이다. 권리는 적고 책임은 크다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직원들은 노동자 지위를 통해 다른 보호를 받는다. 법률에 의해 노동 3권을 보장받고 고용계약의 내용에 따라 지위를 보장받으며 노동조합을 통해 집단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


근대의 산물인 주식회사는 이렇게 의사결정 과정에서 권리와 책임을 투명하게 규정함으로써,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주된 경제조직형태로 빠르게 확산된다. 근대사회에서 승리한 제도이다.


또 하나의 승리한 제도는 정치 영역의 대의제 민주주의다. 대의제 민주주의가 그런 지위를 획득한 데도 그 투명성과 간결성에 이유가 있다. 이 제도에서는 한 사람이 한 표만 행사하며, 다수결에 따른 대표자 선출로 정치를 운용한다. 매우 명쾌하고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이런 투명함과 간결함을 앞세워 근대사회 대부분 국가의 정치체제로 자리잡았다.


한국사회는 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이런 제도들을 모범적으로 정착시켰다고 평가받는 나라다.  


산업화의 마무리는 세계화 및 IMF구제금융으로 장식됐다. 그 핵심은 주주자본주의의 일반화였다. 과거 오너라는 이름 아래 근거 없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군림하던 재벌체제는, 소유한 지분만큼 권리를 행사하는 근대적 주식회사로 그 면모를 바꾸어 왔다고 믿어졌다. 이들 기업들을 앞세우며 한국사회는 누가 뭐래도 당당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로 진입했다고 가슴을 쫙 폈다.


그런데 롯데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최근 일어난 일은 그 자부심의 뿌리를 뒤흔든다. 삼성이 경영권 세습과정에서 벌인 인수합병 소동도 그 흔들림을 거든다. 자본주의니 주식회사니 하는 이야기는 겉치레였을 뿐인 듯하다. 그냥 돈 많고 나이든 이들이 금력과 권력과 완력까지도 독점하는 고령지배체제(제론토크라시)처럼 보인다


특히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최종의사결정권자를 투명하게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런 어려움이 한국사회 수준을 수십년 뒤로 후퇴시킨다. 동시에 한국사회에서 수많은 이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근대사회의 유산이 흔들리고 있다.


무엇이든 쌓아올리는 것은 힘겹고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무너지는 것은 잠깐이다. 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쌓아올린 한국의 근대사회가 무너진다면, 그 붕괴를 촉발한 폭약에는 전근대적 지배구조라는 뇌관이 들어 있을 것 같다.


1995년 이건희 삼성 회장은 기업은 2, 행정은 3, 정치는 4라고 외치며 한국사회 혁신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전근대적 지배구조를 만천하에 드러낸 기업을, 경영권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계열사를 인수합병해대는 기업을, 어떻게 2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4류 기업들을 어찌할 것인가.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경제평론가)


* 2015년 8월 4일치 <뉴스토마토>에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