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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지원조직은 왜 존재하는가 “중간지원조직은 행정과 민간의 중간에 끼어 있는 조직이지요. 행정과 민간이 각각 자기 노릇을 하도록 돕는 조직인데요. 실은 없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조직이지요. 중간에 끼어 있으면 아주 힘듭니다. 없어질 수 있다면 좋겠지요.” 발표자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희망제작소가 60여명의 지방자치단체장들과 함께 연 목민관포럼에서 연단에 올라선 한 중간지원조직 대표자의 발언이었다.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중간지원조직을 대표하고 있는 이였다. 그의 목소리에서 함께일하는재단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문득 떠올렸다. 2007년, 한겨레경제연구소를 처음 설립해 소장을 맡았던 시기였다. 연구소는 사회적기업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중요한 연구분야로 설정하고 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당.. 더보기
안철수와 한혜경 2012년 10월 15일, 안철수 당시 대선후보는 삼성전자 LCD사업부에서 일하다 뇌종양에 걸려 투병중인 한혜경씨를 방문했었다. 나는 당시 캠프에서 정책기획을 맡고 있었다. 출마선언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선 레이스가 막 시동 중이던 때였다. 사무실은 24시간 뜨거웠다. 하루하루 급박한 시간이 이어졌다. 당시 캠페인 기조는 '경제'와 '혁신'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사실 이 방문은 이례적이었다. 기조와 정확히 맞는 것도 아니고, 당장 지지율에 도움이 될 것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및 LCD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 가운데 백혈병 뇌종양 등의 중병을 얻은 이들이 산업재해 인정을 받느냐 아니냐는 당시까지만 해도 심각한 논란의 대상이었다. 삼성전자는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었다.그나마 .. 더보기
청년이 제안하는 사회는 다르다 그들의 좌절과 분노는 컸다. 20대 법학도들과 만난 자리였다. '50~60대 베이비붐 세대가 밉다. 누릴 것은 모두 누리고 청년들에게는 이런 사회를 물려주고 가려 한다.' 나는 그들에게 물었다. '그럼 청년들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가?' 이야기는 봇물이 터졌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과 이루고 싶은 사회 변화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밤이 깊어질 때까지 끝날 줄을 몰랐다. 지난 3월 열린 '광복 100년 대한민국의 상상' 컨퍼런스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청년들에게 던졌었다. '30년 뒤 한국사회는 어떤 모습이라면 좋겠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최근 희망제작소는 이 행사에서 청년들이 제시한 한국사회 비전을 분석해 라는 제목의 보고서로 발간했다. (보고서 링크) 제약조.. 더보기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지금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 서울 성동구 금호동과 행당동 일대 산동네에는 오래된 주택과 상가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대학생이던 나와 내 동료들은 그 동네 구석의 작은 집에서, 아이들에게 영어와 수학을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했다. 때로는 같이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노동하며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우리를 이모, 삼촌이라고 불렀다. 어느 날 그 일대를 재개발해 대규모 아파트촌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 나왔다. 쫓겨날 처지가 된 세입자 엄마아빠들은 반대했지만 철거용역업체가 들이닥쳤고 재개발은 진행됐다.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기타를 치며 “우리에게 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로 시작되는 노래 ‘땅’을 불렀다. 그 성동구에 ‘젠트리피케이션’.. 더보기
불평등이 성장을 가로막는다 ‘평등하면 게을러진다. 그러면 성장이 정체된다. 성장하지 않으면 모두가 먹고살기 어려워진다. 조금은 불평등해야 경쟁에서 이겨 큰 몫을 차지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혁신하게 되고, 그래야 성장이 일어난다.’ 성장론자들이 오랫동안 믿었던 신화다. 복지 논쟁에서, 임금 책정을 둘러싼 논란에서 항상 등장하는 이데올로기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그것도 변방의 변화가 아니다. 자본주의 한복판인 미국과 주류경제학계에서의 변화다. ‘불평등’이 전세계인의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최근 상황을 보면 분명 그렇다. 출발은 미국이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미국의 소득 및 부의 불평등이 10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에 근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2014년 10월 보스턴 연준이 연 ‘경제기회와 불평등’ .. 더보기
한일정상회담과 군 위안부 문제 2015년 6월 21일 참석한 '제 3회 한일미래대화'에서는 한일관계에 대한 우려가 희망을 압도하고 있었다. 한국의 동아시아연구원과 일본의 겐론NPO가 양국 전문가 20여명을 초청해 일본 도쿄 UN대학에서 연 세미나였다. 한일수교 50주년의 하루 전날이었다. 우려의 근거는 지난 4~5월 동아시아연구원과 겐론NPO가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였다. 이 조사에서 한국 국민 가운데 72.5%는 일본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일본 국민 가운데 52.4%가 한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다. 이런 인식의 기저에는 역사문제가 깔려 있다. 한국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국가 차원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하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더보기
삼성의 실력 삼성이 뚫렸다. 삼성은 메르스를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 삼성서울병원은 처음 확진자를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그 뒤 확산을 막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전체 확진자 가운데 절반가량이 삼성서울병원을 통해 감염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삼성은 2011년 그룹 전략기획실 출신 경영자를 이 병원 사장으로 임명했다. 병원 경영진에는 여러 계열사의 경영전문가들을 보냈다. 그 뒤 병원은 구조조정작업을 진행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등 삼성식 경영을 진행했다. 이 병원은 이재용 부회장이 최근 이사장으로 취임한 삼성생명공익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삼성은 또 경영권 승계 과정을 관리하는 데도 실패했다.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지난 6월4일 삼성물산 지분 7.12%를 취득하고, 제일모직과의 합병을 반대한다고.. 더보기
고령사회와 고령자 지배사회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중이다. 앞으로 수십년 동안 정치와 경제 전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전망이다. 경제적으로는 일하는 사람들의 노인 부양 부담이 커진다. 현재 생산가능인구 5명 가량이 노인 1명을 부양 중인데, 2050년이 되면 1.4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할 전망이다. 피라미드형이던 인구 그래프는 점차 원통형으로 바뀌더니 이제 역삼각형으로 변해 간다. 2060년에는 가장 인구가 많은 연령이 80세이고 그 다음이 65세라는 암울한 통계청 인구 추계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경제만큼이나 큰 영향을 받는 영역이 정치다. 이미 고령 유권자를 의식한 정치가 강화되고 있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이 정치 쟁점으로 떠오르는 일은 처음이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고령자 정치가 시작되는 시점인 듯하다. 걱정스.. 더보기
연봉 6천만원, 분노했던 당신에게 그 시간, 벌써 넉 달이 지났군요. 1월이었으니까요. 정말로 오랜만에 당신의 분노를 보았던, 그 자리 이야기입니다. 당신은 불합리한 세제와 무능한 정치와 비겁한 재벌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부조리에 분노한 열혈 대학생을 만난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세금이었습니다. 연말정산을 해 보니 300만원을 내놓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는 게 그 시작이었습니다.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이 나라에는 근로소득세를 정산해 300만원을 내놓기는 커녕, 근로소득세 총액이 300만원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승리했습니다 그럼에도 당신과 당신의 동료들은 승리했습니다. 야당은 세금폭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경제부총리는 당황하며 머리숙였습니다. 그리고 5월 12일 연말정산 보완대책이 국회를 통과.. 더보기
'막다른 일자리'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감동적인 대자보 사진이 화제다. 연세대의 ‘기숙사 청소·경비 노동자 일동’ 명의로 쓴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제목의 대자보다. 비뚤지만 정성 들여 쓴 글씨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야기는 역설적이게도 해고 통보로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말 학교 쪽은 청소용역업체 선정 과정에서 예산을 줄였다. 선정된 용역업체는 72명의 청소·경비 노동자 가운데 23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결국 파업에 돌입했고, 학생들과 동문들이 나서면서 학교 쪽이 고용 유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청소노동자 월급은 120만원이다. 스물셋을 줄이면 한달에 2760만원. 이런저런 경비를 치면 3000만원 안팎이 될 것이다. 최저가 입찰을 도입하고 일자리를 줄임으로써 연간 3억6000만원가량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연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