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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의 생각

<리뷰> 파친코: 자본주의 스토리 - 경제 코드로 읽은 드라마 파친코 오랜만에 드라마를 정주행했다. 애플TV+의 였다. 이미 유명한 작품이고 많은 분들이 리뷰도 써 주셨다. 많은 분들이 한일관계의 역사와 디아스포라 문제에 대해 깊이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이 드라마를 봤다. 이야기 곳곳에 자본주의와 근대성과 시장경제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비판과 토론이 가득했다. 시장에서 시작해서 시장으로 끝나는 드라마 구조 파친코는 시장에서 시작해서 시장에서 마무리되는 드라마다. 1편 영도의 어시장에서 시작해서, 마지막편인 8편 오사카의 시장 좌판대에서 끝난다. 재일동포 아버지는 일본에서 파친코를 운영하고, 아들은 글로벌 파친코인 월스트리트에서 일한다. 아버지는 파친코의 승률을 조작해 고객의 돈을 훔치고, 아들은 한국인 할머니를 구슬러(속여) 집을 팔.. 더보기
애자일 방법론과 정책결정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숙원사업이던 이른바 ‘오바마케어’가 미국인들 앞에 첫선을 보였던 것은 2013년 10월 1일이었다. 웹사이트를 통해 훨씬 더 범위가 넓어진 국민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직후였다. 그런데 재선 대통령의 공약사업으로 엄청난 권력을 등에 업고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개발한 사이트를 여는 순간, 대혼란이 시작됐다. 사이트는 순식간에 다운되었다. 건강보험 제도 자체에 대한 논란도 컸지만, 어이없게도 웹사이트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이 야심적 정책은 큰 위기에 봉착했다. 오바마케어 웹사이트 구축은 한국 돈으로 6천억원 이상의 세금이 투입되고 55개 소프트웨어기업이 동원된 거대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이른바 ‘워터폴 모델’이라는 전통적 소프트웨어 구축 방식으.. 더보기
돌연변이와 퍼실리테이터 최근 한국사회 전체를 긴 호흡으로 전망하는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희망제작소가 진행 중인 ‘시대정신을 묻는다’ 연구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지만 오랫동안 한국사회 전체를 조망하며 대안을 모색해 온 지식인들을 연달아 인터뷰한 뒤 공통점을 찾아내는 기획이다. 결론으로 현재 한국사회가 한 걸음 더 전진하려면 어떤 시대정신이 필요한지를 찾는 내용이다. 이 기획을 진행하느라, 운 좋게도 다양한 분야의 석학을 두루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인터뷰 대상자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경우가 많다. 보수적인 이도, 진보적인 이도 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같은 전직 경제 관료도,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같은 페미니스트 문화인류학자도 있다. 학자도 있고 현장을 누비는 운동가도 있.. 더보기
나의 살던 고향은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막내의 등굣길에 동행했다. 신이 나서 아빠 손을 잡고 집을 나선 막내는 저 멀리 교문이 보이자 슬며시 손을 뿌리친다. 많이 컸구나, 속으로 감탄하면서도 마음 한쪽은 서운하다. 하지만 낯익은 교문 앞에서 그 마음은 스르르 녹아내렸다. 막내 입학식 날 교가를 제창할 때 나도 따라 불렀다. 첫째 입학식 때도 그랬다. 아이들도 학부모도 아직 모르는 교가를 나 혼자 큰 소리로 따라 부를 수 있었던 건, 아이들과 내가 초등학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내 고향은 서울이다. 어린 시절 자랐던 동작구 대방동에 아직도 산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이 동네가 낯설다. 어릴 적 익숙하던 동네는 전혀 다른 곳처럼 변했다. 두부 공장 자리에는 신축 빌라가 들어섰다. 집 장사를 하려는지 층은 높고 칸은 많아 보인다... 더보기
알파고가 이세돌을 대체하고 나면 이세돌과 알파고 사이 세기의 바둑 대결을 지켜보며 나는 엉뚱하게도 최근 접했던 한 통계를 떠올렸다. 2015년 20대, 30대 가구소득이 사상 최초로 줄어들었다는 조사 결과였다. 어쩌면 알파고가 20대, 30대의 경제적 안녕과 충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게 걱정하고 있었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에 따르면 가구주가 39세 이하인 2인 이상 가구의 지난해 월평균 소득은 431만6천원으로 그 전 해보다 0.6% 줄었다. 놀라운 일이다. 아무리 경기가 나빴다고 하지만 평균소득은 꾸준히 상승했다. 20~30대면 그것도 왕성하게 일하고 근로소득을 벌어들일 때 아닌가. 실제로 사회 활동을 활발하게 시작하는 연령대인 20∼30대 가구의 소득이 줄어든 것은 2003년 가계동향 조사가 시작된 이후 처음이다. 2.. 더보기
동네 빵집이 달라졌어요 우리 집 앞에는 맛있는 단골빵집이 있다. 그 집이 어느 날 문을 닫아 걸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대기업 브랜드 빵집들 사이에서 자기만의 간판으로 잘도 버티던 집이었다. 친절한 주인 아저씨 표정이 어른거렸다.다행히 눈 밝은 우리 아이가 기쁜 소식을 알려줬다. 실은 새로운 종류의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장비를 갖추느라 잠시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다. 곧 다시 문을 연다고 했다. 돌아가 자세히 보니 공사중인 빵집 유리창에는 몇 주 뒤 다시 문을 연다고 써붙여져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몇 주 뒤 돌아온 빵집의 인테리어는 훨씬 더 세련되고 멋스러워졌다. 건강에 좋다는 발효빵도 들여왔고,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모카빵도 제 자리를 찾았다. 이런 정도라면 서울의 가장 부자 동네에 가도 어울리겠다는.. 더보기
신영복이라는 사람 저자인 신영복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방금 접했습니다. 제가 신영복 선생님의 이름을 을 통해 접한 때는 대학에 처음 발을 디뎠던 1991년이었습니다. 그때 캠퍼스에는 민주화의 흥분과 좌절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흥분이 있었습니다. 1987년 민주화의 결과로 자유로운 의견이 넘쳐났습니다. 이전까지 금기였던 북한과 통일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습니다. 사회과학 서적들이 학교 앞 서점에 넘쳐났습니다. 자발적인 세미나와 학회들은 수준 높은 글을 읽고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좌절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시위 진압 방식은 여전히 가혹했고, 명지대 1학년생 강경대가 시위 중 전경의 구타 뒤 사망하면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정권에 대해 항의하는 이들이 연달아 분신하는 사태가 .. 더보기
삼성전자 양향자 상무님께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며 열린 눈물의 기자회견을 감동적으로 지켜봤습니다. 본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해 기업의 꽃이라는 임원 자리에까지 올라선 신화를 이뤘지만, 젊은이들에게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이야기하지는 못하겠다고 하신 대목에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언론도 저처럼 깊은 인상을 받았는가 봅니다. 인터뷰가 몇 차례 이어졌습니다. 입당한 지 며칠 되지 않아 정당을 대표해 연설도 하시더군요.그런데 걱정스러운 대목이 있습니다. 누가 뭐래도 양 상무님은 성공한 삼성맨입니다. 상고 출신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임원에 올랐습니다. 회사생활 30년 동안 다크호스이던 삼성전자가 세계 1위 반도체기업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함께 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전남 화순군 쌍봉리 시골집.. 더보기
아이슬란드가 아름다운 것은 오로라 때문만은 아니다 tvN 예능프로 의 ‘포스톤즈’는 결국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정상훈·조정석·정우·강하늘, 네 명의 연예인들이 추위를 뚫고 간 그곳은 아이슬란드. 영국의 북쪽,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북서쪽에 있는 북대서양의 섬나라다. 오로라는 물론 눈물 흘릴 만큼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이 나라에서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해 일어난 거대한 변화야말로 오로라만큼이나 눈물을 자아낼 법하다. 달콤한 금융자본의 유혹 독일 시사주간지 은 그 거대한 변화를 겪은 아이슬란드 어부 발리 호스쿨드손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부인 그의 책장에는 리스크 관리와 국제금융 등 금융 관련 서적이 여전히 꽂혀 있다. 어부와 금융전문가라는, 두 개의 아주 다른 직업을 몇 년 사이에 옮겨가게 된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 더보기
국가는 안전해지고 개인은 위험해지고 2015년 말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한국 정부의 신용등급을 역대 최고치로 높였다. 무디스는 지난 18일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Aa3에서 Aa2로 한 단계 상향조정했다. G20국가 중 7개국만 받은 등급이다. 2010년 이후 통합재정수지가 흑자 기조를 이어갔고, GDP대비 0.5% 수준의 재정흑자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무디스는 높게 평가했다. GDP대비 정부부채비율도 40%선이고 GDP대비 대외부채도 30%로 양호하다는 평가다. 국가신용등급 상향은 좋은 소식이다. 그러나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혹시 정부가 혼자만 신용도를 높이고 안전해지면서, 기업이나 가계는 부채가 늘면서 과거보다 한층 위험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올해 12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계부채를 보면 그.. 더보기